(안동)뛰어난 산세와 그에 버금가는 인물들과 한국 정신문화의 정수

 

- 일시: 2023-8-12~13
- 날씨: 태풍 이후 약간은 시원해진 날씨
- 몇명: 홀로

 

경치 좋은 곳에 어울리는 정자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귀거래사의 모습이 연상됩니다.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장소로 학문을 논하고 시를 짓고 거문고를 타며 서로간 안부를 묻는다면 더 없이 좋을 겁니다.또는 나라가 위급할때 거사를 논의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잊혀져 아는 사람만 아는 장소로 범위가 축소되었습니다. 특히 오지 혹은 계곡 안쪽 깊숙히 자리한다면 더 잊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그러나 이런 장소는 요즘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장소가 되어 원래 그 장소가 가진 아이덴디티는 묻혀지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배경장소로만 덧칠되어 새롭게 기억되는 점은 다소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라도 한국의 좋은 곳들이 알려진다는 것은 또 다른 순기능을 재발견하게 됩니다.이번에 간 안동은 "미스터션샤인"의 촬영장소로 알려진 곳이 몇 곳 있습니다.  

 


▷ 답사일정(風輪) :530km

 

고산정(경상북도 안동시 가송길 121)- 농암종택(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613-3) -군자마을-용계의 은행나무-묵계서원,보백당-만휴정

 

2023-8-12

 

우선 가장 보고 싶었던 고산정으로 갑니다.다행히 완전히 어두워기 직전에 도착하여 강가에 서서 독산(獨山) 혹은 고산(孤山) 옆에 서서 맞은편 고산정을 바라봅니다.풍수지리학자들은 "거북이가 물에 잠겨 죽은 형상"이라고 하여 구사잠수(龜死潛水)라고 불렀고 고산정 앞 나룻배가 건너다니던 곳도 있었으며,괴선암도 있었다고 합니다.드라마 미스터썬샤인에서는 유진초이와 고애신이 작은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2023-8-13

 

단천교를 지나 고산정 옆 주차자리에서 일박을 하고 산을 비집고 햇살이 비칠때 기동을 합니다.안동은 어디를 보아도 산세가 참 기품이 있습니다.

 

▷고산정

 

고산정은 조선시대 문신이자 의병장인 금난수(琴蘭秀)가 학문과 수양을 위해 명종 19년(1564)에 지은 정자입니다.금난수(琴蘭秀)는 이름자체가 한번 들으면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그냥 직관적으로 "거문고와 난초가 빼어나다"는 의미가 떠올라 이름에서 벌써 풍류적 고아한 분위기가 묻어납니다.금난수는 경북 예안면 출신으로 명종16년(1561) 생원시에 합격한 뒤 여러관직을 지냈습니다.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 은거하며 노모를 모시다가,정유재란 때 고향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안동을 방어하는데 공을 세웠습니다.고산정은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 강물이 넘어오지 않도록 했고 정자 안에는 금난수와 그의 스승인 퇴계 이황의 시가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梅鶴孤山勝매학고산승

風流赤壁秋풍류적벽추

相追林下徑상추임하경

同作畫中遊동작화중요

楓葉粧紅錦풍엽장홍금

江雲動碧油강운동벽유

居然成一別거연성일별

淸夢會悠悠청몽회유유 

 

매화나무와 학은 고산의 빼어난 운치

풍류가 마치 적벽의 가을과 같네

숲으로 난 길을 함께 거니로라니 

그림 속의 유람과 한가지구나 

단풍잎 붉은 비단으로 수놓고 

강가에 뜬 구름 푸른 강물 일렁이듯

태연하게 이별을 하고 나면 

맑은 꿈 속에서 아련히 만나겠지

- 금난수의 시(孤山亭和金
壽韻)

(필사)

一歲中間六度歸일세중간육도귀 
四時佳興得無違사시가흥득무위 
紅花落盡靑林暗홍화낙진청림암 
黃葉飄餘白雪飛황엽표여백설비 
砂峽乘風披裌服사협승풍피겹복
長潭逢雨何蓑衣장담봉우하사의 
箇中別有風流在개중별유풍류재 
醉向寒波弄月輝취향한파농월휘 

한 해의 가운데에 천지 만물이 모두 돌아오니
사계절이 좋은 흥취는 어긋남이 없구나
붉은 꽃이 다 떨어지면 푸른 녹음 우거지고
노란 낙엽 표표히 떨어지면 뒤엔 흰눈이 날리네
사암 절벽에 바람 일면 겹옷을 입고 
긴 냇가에서 비를 만나면 도롱이를 걸치리
그 가운데 별도의 풍류가 남아있으니 
취한 채 찬바람 맞으며 밝은 달을 희롱하네  

- 금난수의 시로 고산에 노닐다(遊孤山)



상사화 대부분이 지고 그래도 몇그루는 아직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고산정 정자와 내병대 사이 춤추는 듯한 소나무도 인상 깊습니다.

도산서당에서 발걸음을 옮겨 고산정에 도착한 스승 퇴계선생은 고산정을 두고 많은 시를 읊었는데 그 중에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遙憐絶壁千尋下(요련절벽천심하)천 길 절벽이 있고 그 아래 사는 그대는 아름답게 여기니
茅屋臨流讀古書(모옥임류독고서)강가에 임한 초가집에서 옛 책을 읽는다지.
靜裏工夫能會未(정리공부능회미)조용한 가운데 공부는 잘 되고 있는지
書中眞味問如何(서중진미문여하)책 가운데서 느끼는 참 맛은 어떠한가?

-퇴계 이황의 시.고산 금문원(금난수)의 안부를 물으며 부치다

 


일동이라 그 주인 금씨란 이가/ 日洞主人琴氏子(일동주인금씨자)
지금있나 강 건너로 물어 보았더니/隔水呼問今在否(격수호문금재부)
쟁기꾼은 손 저으며 내 말 못 들은 듯/耕夫揮手語不聞(경부휘수어불문)
구름 걸린 산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렸네/ 悵望雲山獨坐久(창망운산독좌구)

- 퇴계 이황이 읊은 것으로, 퇴계집 권2 서고산벽(書孤山壁)

 

(필사)

도산구곡은 오천 군자리에서 청량산 입구까지 낙동강 상류 아홉굽이 50리 길인데 고산정은 도산구곡 중 8곡인 고산곡에 있습니다. 가송협(佳松峽)이라고도 합니다.아마도 퇴계선생이 도산서원에서 청량산으로 가는 도중 고산정을 자주 찾았을겁니다.금난수가 퇴계의 제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안동과 봉화의 접경인 가송리에 있는 협곡으로 물길이 산허리를 끊어 두 개의 절벽으로 갈라놓았고 절벽을 내병대와 외병대라고 합니다.두 개의 절벽을 가르며 유유히 흘러가는 큰 물결이 장관입니다. 고산정은 외병대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정자 안에서 보이는 강 건너 절벽이 내병대이고 마주보이는 산이 고산, 독산입니다.정자 이름은 자신이 앉아있는 곳이 아닌 보이는 풍경의 맞은편 고산에서 따왔습니다.

▷농암종택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는 조선 초기인 1467년, 당시 안동대도호부의 속현인 예안현 분천리(현재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인제 현감을 지낸 아버지 이흠(李欽)과 안동 권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자(字)는 비중(棐仲), 호는 농암, 본관은 영천입니다.20세 때 당대의 대표적 문장가 홍귀달의 문하생으로 수학하고, 32세 되던 1498년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이후 여러 직을 거쳐 35세 되던 해 사관으로 일컫는 예문관 검열에 추천되었습니다.


새내기 사관 시절, 사관은 임금의 용상 가까이에서 사초를 자세히 기록할 수 있어야한다고 청하여 연산군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2년 뒤, 사간원정언으로 언관이 되어 세자가 공부하는 서연관의 실수를 아뢰었는데 이때 보고의 잘못을 빌미로 안동의 안기역으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압송되어 감옥에 갇혀 갖은 고초를 겪었으며 처형을 기다렸습니다. 김일손이 사초에 올려놓은 조의제문이 문제가 되어 발발한 무오사화 4년 뒤의 일이었고, 갑자사화가 일어난 해입니다.

 

연산군은 자신의 심사를 자주 거스른 농암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얼굴이 검붉고 수염이 긴 자’로 부르며 별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산군이 석방할 죄수 명단에 점을 잘못 찍는 실수로 농암은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하고 안기역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관 친구들은 강직하고 공명정대하게 공무 수행을 하는 그를 보고 ‘소주도병(燒酒陶甁)’이라 했습니다. 이는 외모는 검으나 심성이 냉엄하다는 뜻이었다고 하니 농암의 성품을 짐작할만합니다.

농암은 강직,공명정대 공무수행을 했고 오랜 외직 생활에도 청백리의 표상이었고 귀거래와 지극한 효성의 증표로 "애일당"이 있고 농암 가문의 아름다운 전통 "구로회"와 한시 등 시가문학의 문화사적 업적도 큽니다.

대문 안으로 바로 보이는 긍구당은 1370년 전후 이헌이 지은 건물입니다. ‘긍구당(肯構堂)’이란 당호는 『서경(書經)』의 대고편(大誥篇)에서 그 의미를 취한 것으로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훌륭한 업적을 소홀히 하지 말고 길이길이 이어받으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긍구당의 편액은 조선 중종 때의 인물로 시서화(詩書畵)의 삼절(三絶)로 불렸던 영천자(靈川子) 신잠(申潛)이 전자(篆字)로 쓴 것입니다.

지금 농암종택의 규모는 상당히 큽니다만 "신재집""유청량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공의 거처는 비록 협소했으나 좌우로 서책이 차 있으며,마루 끝에는 화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그리고 담 아래에는 화초가 심어져 있었고 마당의 모래는 눈처럼 깨끗하여 그 쇄락함이 마치 신선의 집과 같았다"

청백리 사관이 말해주듯이 지금의 모습은 그 옛날 모습과는 규모가 크게 차이가 난 것으로 보입니다만 무엇보다 농암종택은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었던 분천마을에 있던 고택입니다.

 

농암은 효심이 지극하여 나이 70에 색동옷 입고 춤을 춘 일화도 있는데 시호가 "효절공"입니다. 농암이 은퇴 후 한양을 떠나는 배 안에서 시조 한 수를 읊었는데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본받은 ‘효빈가(效顰歌)’입니다.

 

귀거래(歸去來) 귀거래(歸去來) 말 뿐이요 가는 이 없네
전원(田園)이 장무(將蕪)하니 아니 가고 어쩔꼬
초당(草堂)에 청풍명월(淸風明月)이 나명 들명 기다리나니


벼슬길에서 염퇴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작자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풍광이라면 귀거래를 안할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굽어보니 천길 파란 물
돌아보니 겹겹 푸른 산
열 길 티끌 세상에 얼마나 가려 있었던가
강호에 달 밝아오니 더욱 무심하여라

- 농암선생 어부단가 2장 -

도산서원에 갔으나 오전 9시부터 문을 연다고 하여 군자마을로 갑니다.


▷군자마을

군자마을은 오천유적지로 불리는데 조선시대 초기부터 광산김쎄 예안파가 약 20대에 걸쳐 600년 동안 세거하여 온 마을로 오천군자리라는 유적지입니다.이곳 건물들은 1974년 안동댐 수몰지역에 있는 문화재를 구 예안면 오천리에서 집단이건하여 원형 그대로 보존한 것입니다. 후조당이 국가지정 문화재라고 하여 눈길이 갑니다.

 

그리고 설월당을 보니 이 건물은 설월당 김부륜(1531~1598)이 학문과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했고 김부륜은 광산김씨로 자는 돈서입니다.이황의 문인으로 사마시에 합격하고 여러관직을 역임했는데 임란시에는 가산을 털어 항병을 지원했고 저서로는 설월당집이 남아 있습니다. 

▷용계리 은행나무(용계의 은행나무)

 

은행나무 하나 때문에 다리가 세워져 있습니다.근처에 가니 크기가 압도적입니다. 수령은 무려 700년 이상입니다.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나무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자 1990년 11월 부터 1993년 7월까지 원래 나무가 있던 자리에 15m 높이로 흙을 쌓아 올리고 다시 심었다고 합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은행나무였으나 다시 심는 과정에서 가지가 잘려져 원래의 규모를 잃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근처가면 말 그대로 압도적입니다.

▷묵계서원

묵계서원은 조선 초 문신 보백당 김계행과 응계 옥고의 덕행과 청백 정신을 기리기 위해 숙종 13년(1687)에 창건되었으며 숙종 32년(1706) 사당을 세우고 두사람의 위패를 모셨다고 합니다.김계행은 지금의 하리리인 풍산현 불정촌에서 태어나 5세때 부친을 따라 소산에서 자랐으며 성종 11년(1480)문과에 급제하여 삼사로 불리는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요직을 지냈습니다.대사간일때 연산군의 폭정을 막고자 노력하였으나 고쳐지지 않자 연산군 4년(1498)에 안동으로 돌아와 후학양성에 힘썼으며 청백리로 추앙 받고 있습니다.

▷ 보백당 종택

 

 "우리 집엔 보물이 없다. 있다면 청렴[淸白]이 있을 뿐이다(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라는 유훈(遺訓)을 남긴 보백당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훗날 묵계서원이 세워졌습니다. 지금은 보백당 종택,묵계서원,만휴정 모두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만휴정

 

보백당은 앞산 깊은 계곡에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를 걸쳐놓고 만휴정(晩休亭)이라는 환상적인 정자를 짓고는 이름 그대로 만년의 휴식처로 삼아 나이 87세까지 여기서 지냈습니다.

만휴정의 위치가 절묘합니다. 두개의 폭포 사이에 외나무 다리가 허공에 뜬듯이 걸려 있습니다.

만휴정 편액에도 김계행의 생활철학 시구인 "우리 집엔 보물이 없다. 있다면 청렴[淸白]이 있을 뿐이다(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걸려 있습니다.

위쪽 폭포자리에는 바위 위에 같은 내용을 각자까지 해 놓았습니다.

미스터션샤인에서는 "합시다.러브.나랑 같이"라는 대사로 고백하는 장면이 떠오르지만 원래 만휴정은 글자 그대로 "말년에 쉬는 정자"의 의미이니 은퇴후 말년에 독서와 학문을 연구한 곳입니다.  

입장료는 1000원입니다.

안동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합니다.알면 알수록 이 슬로건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수려한 산세와 그에 버금가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평시에는 청백리를 보여주고 전시에는 의병장이 되거나 재산을 모두 내어 놓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줍니다.

첫 째,유교문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추로지향(鄒魯之鄕)」의 도시
둘 째,우리나라 유일의 지역학인 「안동학(安東學)」이 존재하는 곳
셋 째,「평생학습도시(平生學習都市)」로 선비정신을 계승 발전
넷 째,한국 최다 독립운동가 배출 「독립운동의 성지」
다섯째,전통과 예절이 살아 숨쉬는 「인보협동(隣保協同)」의 도시
여섯째,우리나라 대표 축제가 된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일곱째,과거 엄청난 지식정보 집대성, 미래 비전 설계
여덟째,한글을 보존하고 가꾸고 사랑한 고장, 안동

안동은 한번 갔다오면 머리 속이 청신하게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

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 Recent posts